향파의 부산사랑-동인지 『윤좌(輪座)』
해방 후 1947년 부산에 오신 향파 이주홍 선생은 1987년 돌아가실 때까지 40년간 부산에 살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고 주변에 사람이 많았던 선생은 부산 문인들과 함께 많은 활동을 했다.
그중에 1965년 김정한, 유치환, 한형석과 함께 발기인이 되어 창간한 『윤좌』는 50년 세월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윤좌』는 문학뿐 아니라 음악, 교육 등 각 분야에서 중심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모였다.
창간 동인으로
소설가 요산 김정한, 시인 청마 유치환
시인 이영도, 의사이자 수필가였던 박문하
독립투사였던 먼구름 한형석
동물학자이자 교육자였던 김하득
작곡가 이상근, 영화평론가 허창
식물학자 이용기, 소설가 최해군 선생 등이 참여했다.
윤좌는 동인들이 둥글게 무릎을 맞대고 둘러앉는다는 의미로,누군가 장이 되어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이가 힘을 합쳐서 함께 더불어 가는 것을 지향했다.
1965년부터 일 년에 두 번 내기도 하고 한 번 내기도 하며, 내용도 문학의 한 방향이 아니고 그냥 돌림노래 삼아 한 자리씩 이야기를 모아 본 것이라고 밝힌 후기처럼 자유로운 형식을 가졌다.
창간호는 50쪽 정도의 불면 날아갈 듯 얇은 잡지였지만 알찬 내용과 맛깔스러운 편집이 돋보였다.표지화와 제자(題字) 그리고 장정까지 선생이 직접 그리고 만들었다. 표지 뒤에 실린 광고는 그 당시 부산의 출판 상황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지금도 『윤좌』는 부산지역의 문인과 학인들 중심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윤좌 창간 50주년을 맞이해서 ‘50주년 기념호(제 42집) 제각기 가진 행로 위에서’를 냈다.
윤좌 창간호(1965. 6.) 선언문 - 청마 유치환
"… (전략) 제각기의 마음 내킨 행색인 목적이면서도 서로가 주고받는 심중을 속임 없이 이야기하고도 듣고 하는 가운데 어느새 마련된 마음과 마음의 통로와 유대를 서로가 아끼게 된 그것인 것이다.
그리하여 앞길을 가름하여 알맞은 시간에 알맞은 곳, 훤히 트인 초원의 한 그루 나무 그늘이나 맑은 계곡 기슭 같은 데서 걸음을 쉬어 둘러앉아 무거웠던 마음들을 풀어 놓곤 다시 서로의 이야기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제각기 가진 행로 위에서 앞서 가고 뒤서 가고 하는 중 지극히 우연히 이뤄진 한 무리의 일행인지 모른다.거기엔 까다로운 그 무엇도 있을 턱이 없다."
『갈숲』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인 7명이 모여 창간한 동인지로 선생이 애정을 많이 가졌던 동인지다.
선생은 부산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선생은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큰 별이다.또한 선생은 부산의 아동문학 발전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아동문학의 불모지였던 부산에서 1958년 최계락, 손동인과 함께 "부산아동문학회"를 만들었다.
이후 다른 아동문학 단체가 생김으로 해서 부산은 두 단체로 나누어지게 된다.
1984년 후배들의 요청으로 ‘부산아동문학인협회’ 회장직을 수락함으로써 두 개로 분열되었던 부산 아동문학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기여한 공로는 커다란 업적으로 남았다. 그 후로 지금까지 부산의 아동문학은 하나인 단체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선생이 통합하여 부산아동문학 기관지를 내면서 『부산아동문학』 제호를 직접 썼다. 이 제호는 지금까지 계속 위 단체의 회보와 연간집에 사용되고 있다.
"부산아동문학인협회"는 해마다 봄이면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묘소 참배는 선생의 문학적 발자취를 기억하며 생전 선생과의 일화를 추억하는 봄 세미나를 겸한다.
그 자리는 선생이 『윤좌』를 창간하며 둥글게 무릎을 맞대고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꽃피웠던 그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윤좌』를 생각하며 우리도 손에 든 휴대폰과 눈 맞추기를 잠시 멈추고, 같은 시대를 함께 걷는 이들과 서로의 무릎을 맞대고 앉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글·사진 이주홍문학관 상주작가 김나월
출처 사단법인 한국문학관협회 youtube [문학관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