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파 이주홍의 길

우리의 시간은 언제나 길 위에 서 있다.
길은 어디론가 뻗어있고, 누군가에게로 향하며, 무엇인가에 가 닿는다. 
그러면서 길은 언제나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이주홍 선생은 참으로 다양한 길을 걸었다. 
부산 곳곳에는 선생이 살았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선생이 남긴 업적을 기리는 곳들이 있다.

선생이 천천히 걸었던 길, 혹은 분주히 뛰어가다 가끔은 멈추어 쉬어가던 길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교육자이며, 예술가와 문학가로 살다 간 선생의 시간과 향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이미지를 누르시면 상세한 사진과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선생은 훌륭한 교육자였다. 배재중학교를 거쳐 1947년 부산 동래중학교로 학교를 옮기면서 부산에 정착하게 된다. 


선생이 마지막으로 근무지를 옮긴 1949년 당시만해도 수산대학교 (현 국립 부경대학교)는 이공계가 주류였다. 

이후 국문학과 교수로 근무하면서 대학 연극의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고, 부산 각계각층의 한 축을 이루는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선생이 근무했던 부경대학교 후문에는 
"향파 이주홍 문학거리"가 잘 조성되어 있다. 

이 곳은 전철역에 내려 학내로 들어가기 가까운 곳이다. 

상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그 곳은 수업 후 배를 채우기 위해, 따뜻한 차를 나누거나, 한 잔 술로 친교를 위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 길에서 방황하는 청년에게 위로와 신뢰를 보내는 선생의 따뜻한 음성을 느낄 수 있도록 문학 거리가 단정하고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다. 

 

“저 순수하고 정직하고 야성적인 곳에 
청년다운 매력이 있다.
그들이 무모한 위험을 되풀이한다 해서 

웃을 일은 아니다.
그들이 정상적이 아닌 곳으로 방종한다 해서
근심할 일도 아니다.
 인간은 항상 자기의 체험에서 

선악의 분별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수산 타임즈 " 청년의 향기"  중에서 

부산 동래구 온천동 금강공원 내  < 이주홍 문학의 길 >  

선생은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다. 온천장에 거주했던 선생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가까운 금강공원에 들어 산책을 즐겼다. 

청신한 숲에서의 시간들은 생활인 이주홍이 아닌 오롯한 “인간 이주홍”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또한 예술가로서 영감의 신발 끈을 고쳐 매는 시간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금강공원 산책길에서 선생은 어렸던 자녀들을 자주 동반하여 그 시간을 즐겼다고 한다.

선생은 가족 사랑이 유난했다. 선생은 수많은 작품에 자녀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선생의 발길이 굳은 그 길은 지금  "이주홍 문학의길"로 조성되어 있다. 

길 입구에는 있는 "해같이 달같이만" 동시가 새겨진 문학비가 지나는 행인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걸음을 멈추고 이 푸른 숲에서 잠시 쉬어가도 된다고…. 그러니 쉬어가라고.


또 하나의 길은 문학관 가는 길이다. 

"향파 이주홍문학거리" 문학관을 찾아 길을 들어서다 보면 입구에 이주홍 선생을 조형물로 만난다. 

문학의 거리로 들어서는 발밑에는 문학을 향한 선생의 첫걸음을 만날 수 있다.

길바닥에는 "배암색기의 무도"가 제목으로 쓰인 원고지가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1928년 선생의 동화 등단작이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도 있지만 선생의 첫 아동문학으로의 발자국은 이 작품으로 시작한다.

 길 위에 새겨진 원고지를 쫓아 한 발짝 한 발짝 선생의 문학적 시간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문학관 입구가 나온다.

문학관에는 선생이 걸었던 성실하고 치열했던 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거리는 2019년 여름에 완공되었다. 

지나온 길은 흔적이며 역사다. 앞서간 선생의 시간들을 기억하고 보존하며 누리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며 또한 책임이다.

먼저 길을 걸었던 선생과 우리의 시간들이 쌓이며, 길은 여전히 거기에 있을 것이다. 다음에 올 누군가를 기다리며...                  

  글 · 사진   이주홍문학관 상주작가 김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