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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파 이주홍(1906~1987)은 일반적으로 아동문학가 및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 그가 해방 이후 황무지와 다름없었던 부산 연극의 현장을 주도적으로 개척하였던 극작가이자 연극인으로서 이루어놓았던 선구적 업적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1930년대 전반기에 이미 아동극의 영역을 선구적으로 개척하였던 극작가 중 한 명이며, 또한 그를 통해 일제와 계급모순에 저항하였던 사실 또한 안타깝게도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듯하다.

 이처럼 극작가로서 한국 아동극계와 부산 연극계에 선구적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면모가 아직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극문학계의 관심이 소홀하였던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자료의 발굴이 용이하지 않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이 주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02년에‘이주홍 문학관’이 개관됨으로써 거기에 향파의 극작품들이 다량 보존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아동문학이나 소설 등에 관련된 자료들이 갈래별로 가지런히 서가에 정리된 것에 비하여 향파의 희곡 관련 자료들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로 다른 자료들과 섞여 있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향파의 희곡은 지면을 통하여 발표된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연극 현장에서 직접 공연되었다. 그러므로 그 형태는 공연용 대본으로써 철필로 긁어 등사, 제본된 유인본이었으며, 일부는 육필 원고의 형태로도 발견되었다. 이는 부산 지역의 현대연극을 개척하였던 당시의 귀중한 사료로서, 향파 탄신 100주년을 맞아 전집으로 기획 출판할 수 있게 되어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아울러 이를 기화로 향파의 극문학 연구에 큰 전기가 마련될 것을 기대한다.

 향파의 문학적 전기(biography of literature) 중 하나인「나의 연극 노우트」에 의하면, 그의 극작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한 때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고학을 하던 시기인 1924년~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광도서 교포친구들과 그곳 공회당을 빌려 했던 것으로, 각본은 물론 내가 쓴 것이었으나 내용도 제목도 지금은 까맣고,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으로는 연기 도중에 가발과 수염이 떨어져서 웃음을 샀던 일과, 내용이 불온하다 해서 임석 경관이 광도에서 떠나가라고 추방 명령을 했던 두 가지 일이 있을 뿐이다.

 이 회고록의 대목에 의하면 향파의 초기 극작가로서의 의식은 히로시마에서의‘추방명령’을 받을 정도로 경향성을 띠는 것이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이러한 경향의식은 귀국 후 카프계열의 아동문학지『신소년』의 편집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펼쳤던 창작활동을 통해 구체화된다.

 『신소년』과의 인연은 향파로 하여금 동화와 동요의 갈래에서 아동극으로까지 그 창작의 영역을 확대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또한 이는 해방 이후 학생극과 성인극 창작으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토대가 되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는 것이다.

 이에 잠시 극작가로서의 향파의 세계를 조명하기 전에 그가『신소년』에서 활동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06년 5월 20일,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향파 이주홍은 1918년 합천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4월에서 1924년 3월에 이르는 동안 서울 한성중학원을 졸업했다. 1924년 히로시마로 건너간 향파는 고된 노동 속에서 독학을 하다가, 1926년 4월부터 1928년 3월까지 토오쿄오의 정칙영어학교를 수료한다. 졸업과 동시에 히로시마로 돌아온 그는 1928년 4월부터 재일 한국인을 위한‘근영학원’의 설립에 참가하여, 교무주임으로 한국 이주민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교육자로서의 첫발을 디딘다.
그러다가 1929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가난과 사랑」이 선외 가작으로 입선되는 것을 계기로 그 해 봄 귀국, 상경하여『신소년』 편집기자로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향파와 아동문예지 『신소년』과의 인연은 열여덟 무렵인 1923년부터 여러 차례 독자란에 투고하는 가운데 표지, 그림까지 그려 보내는 열성으로 맺어졌다. 그가 귀국 후 『신소년』에 입사하게 된 동기도 그러한 열정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입사 후 그는 이미 1925년에 투고하였던 동화「뱀새끼의 무도」가 독자 투고란이 아니라 정식 지면으로 발표되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이것이 향파의 등단작으로 알려져 왔으나 지금까지 그 실체가 확인되지 않던 중, 나까무라 오사무와 박태일에 의해‘「뱀새끼의 무도는『신소년』1928년 5월호에 실린「배암새끼의 무도」를 향파의 착오에 의해 1925년으로 기록된 것’이라며 그 등단연도와 작품의 제목을 수정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와 같이 『신소년』은 향파 문학의 출발지로서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 거기에 아동문학으로서는 드물게 아동극 작품이 더불어 창작되었다는 사실은 특기할만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향파는 『신소년』을 통해 실로 다양한 갈래(동요, 동화, 소년소녀소설, 아동극, 야학가극)의 아동문학을 발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소년』에 발표된 아동극(야학가극 포함)은 향파의 초기 작가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아래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향파는 1930년 1월에서 1934년 4월 사이에 다음과 같이 7편의 아동극을 발표하고 있다.

번호
작품명
발표지
연대
갈래
비고
1
뱀사람·말사람 신소년 1930.1 세시풍속극  
2
톡기눈알 신소년 1930.2 우화극  
3
팥밧 신소년 1930.3 아동극 검열로 전문삭제
4
젊은 통장사 신소년 1930.4 희극  
5
도화시간 신소년 1930.8 풍자소극  
6
개떡 신소년 1934.3 야학가극 검열로 15행삭제
7
낙동강 봄빛 신소년 1934.4 아동극 검열로 전문 삭제


 향파는 귀국 후부터 일제 말 부일 문학기 직전(1929. 12 ~1939. 7)까지 무려 50여 편에 이르는 아동문학을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주로 그 갈래가 동화와 동요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유독 이와 같이 1930년대 전반기에만 아동극이 집중적으로 발표되고 있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다. 아동극 창작은 이후 카프의 해체와 함께 중단되었다가 해방 이후에야 다시 보이는데, 그것도「토끼의 가정」(1947),「승전고」(1952),「똘이의 재판」(1954),「못나도 울엄마」(1966) 등 네 편으로 산재해 있다.

 향파의 아동극이 집중적으로 발표되었던 1930년대 전반기는 알다시피 카프가 목적의식기에서 볼세비키적 대중화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가장 맹렬하게 저항문학을 펼쳐나갔던 시기이다. 카프의 목적의식과 볼세비키적 대중화의 방침이 강력하게 문단을 주도하던 시기에 향파의 아동극이 집중적으로 창작되었다는 사실에서 그의 작가의식은 짐작된다. 연극은 현장에서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지향하는 까닭에 그 어느 예술 갈래보다도 선전·선동력이 뛰어나다. 일제의 지배하에 고통 받는 민족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인간소외의 모순을 낳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계급의식과 저항의지를 식민지 아동들에게 심어주기 위하여 향파는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소통을 지향하는 극문학의 갈래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위 7편의 아동극 중 2편이 검열로 인해 전문 삭제되었다는 사실에서 향파의 그러한 갈래 선택의 의지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그 전문이 삭제됨으로써 당시의 아동들에게 수용되지 못했던 사실이나, 그리하여 오늘날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음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지면을 확보한 5편의 아동극 중「톡기눈알」과「개떡」은 극작가로서의 향파의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개떡」은 비록 부분적으로 삭제된 대목들이 있지만, 이 두 작품은 그래도 자신의 저항적 구조 의지를 선명하게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카프시기에 집중된 아동극작품들은 선생의 초기 작가의식뿐만 아니라 카프 계열의 아동극 양식의 특징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다음과 같이 나름대로 그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일제강점기에 씌어진 향파의 아동극은 한국아동극의 지평을 개척한 선구적 작품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둘째, 그들 아동극은 다시 세시풍속극, 동물우화극, 희극, 풍자소극, 야학가극 등의 다양한 갈래로서 실험됨으로써 아동극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의의를 지닌다.

 셋째, 그러한 각각의 하위 갈래들은 다시 극적 알레고리, 독백을 통한 전사의 보고, 위기의 점층식 구성, 희극적 이완, 최후의 긴장, 노래를 통한 힘찬 피날레, 에이런을 통한 풍자 등등의 다양한 극적 기법들을 구사함으로써 아동극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는 의의를 지닌다.

 넷째, 가벼운 계몽주의에서부터 민족모순, 계급모순을 극복하고자 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식을 표출하고 있다는 의의가 있다. 특히「톡기눈알」과「개떡」을 통해서는 초기 향파 문학이 견지하였던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의의를 지닌다. 그 중에서도「톡기눈알」은 다양하고도 치밀한 극적 기법에 의한 구성을 완성시킴으로서 매우 뛰어난 아동극의 수준을 보이고 있어, 이 작품을 대표작으로 손꼽을 만하다.

 1940년대로 접어드는 일제 말기에는 아동극 활동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이 시기에는 집중적으로 몇 편의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40년 1월에는 시나리오 「전원회상곡」을 『영화연극』 제2집에 발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전편과 후편으로 나누어 청탁된 것으로서 『영화연극』 2집엔 그 전편이 실려 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영화연극』지가 제3집부터는 보이지 않아 아마 제2집으로 종간된 듯한 사실이다.

 작품의 내용은 가야산 해인사가 있는 합천의 기룡이 사는 마을에 5년 전에 이사갔던 안서기네가 다시 이사를 오면서 옛 동무 사이였던 기룡과 정란(안서기의 동생, 17세)이 연정을 쌓아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기룡의 친구 세갑이 끼여들면서 내러티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려 하는 가운데 전편이 끝난다.

 그리고 그 부기를 보면 “지면관계로 우선 여기서「전 편」이라 하고 끊어둡니다만 실상은 좀더 나가서 전편의 끝이 될 것입니다. 정작 이 사건의 전개는 이 댐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다음 달의 후편과 아울러 보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하여 아쉬운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 다시『영화연극』지의 편집후기를 보면 “난봉만 피우고 놀다가 약속한 씨나리오를 하루밤사이에 썼다. 검열시간까지 쓰다가봐도 내가 끊을랴든 은 아직도 수삼십 매를 써야 하겠으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엉터리의 견본쯤으로 보면 되리라.…(중략)… 내가 맡은 잡문기사도 하나도 못 썼다. 그 대신 와리쓰께 교정이나 잘 보아야겠다. 다음호에는 정말 잘 쓰련다”라고 고백하고 있어, 그 후편이 『영화연극』지의 종간으로 인해 아쉽게도 그만 발표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런데 그 후편이 집필되어 유고로써 이주홍문학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어 이 전집을 통해 빛을 보게 된 것은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위의 편집후기를 보면, 향파는 이때 『영화연극』의 편집을 맡아 표지와 컷 및 교정 등의 일을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영화연극』의 제1집이 1939년 11월에 출판된 것으로 보아 격월간으로 기획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향파는 이 1집에 「영화횡수설」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영화계의 유치한 수준을 반성하는 평론을 싣고 있다.

 이후 향파는 윤봉춘씨가 관계하던 ‘한양영화사’에 적을 두고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집필하였으나 회사의 운영난으로 영화화되진 못하였다. 이때 쓴 시나리오의 하나인 「동학당」을 희곡 「여명」으로 각색하여 1943년에 이대연이란 가명으로 『매일신보』 현상 모집에 응모하여 당선된다. 또 마찬가지로 그때의 시나리오 중 「장미의 풍속」을 ‘조선영화회사’의 3백 환 현상모집에 역시 어가영이란 가명으로 응모하여 당선된다.

 백철의『조선신문학사조사』에 의하면 향파는 카프가 해체된 이후에도 당시의 시대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경향파 작가로 소개되고 있다. 향파의 그런 의식은 해방공간에도 이어져 좌우익 대립기 동안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좌파 문단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조선문학가동맹’에서 주최한 ‘전국문학자대회’(1946. 2. 8)에 참가하여 아동문학부 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그 기관지인『문학』창간호 표지와 컷의 도안을 위시하여 ‘주요한 좌파 문예잡지의 경우 향파의 솜씨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할 정도’로 활동한다.
이 시기에 향파는 본격적으로 성인극 창작 활동을 전개하는데, 그것은 주로 학생극을 지도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향파는 해방과 함께 배재중학교 교사로 재임하는데, 이것이 극작 활동의 산실이 된다.

 해방이 된 즉시로 그때 배재에 있었던 나는 우선 어느 일보다도 연극에 손을 먼저 대었다. 혼란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청소년들의 역사적 흥분을 우선 극적 이성 안에다 붙들어두자는 생각에서였다. 「진리의 뜰」, 「집」, 「대차」. 「집」은 「좀」이라 개제해서 당시 김 송 씨가 주간하던『백민』에 발표도 했었지만, 배재의 강당에서 수3회를 거듭해 상연을 한 이 연극들은 모두 대성공이었다.

 이렇게 하여 아동극에서 학생극으로 전환된 희곡 창작은 1947년 여름, 향파가 부산의 6년제 동래공립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전근하여 이 학교의 연극반을 전담하면서부터 보다 왕성하게 전개된다. 당시 학생 연극을 지도하였던 이시우가 부산중학교로 옮겨가면서 자연스럽게 향파가 그 후임을 맡게 되고, 또한 김하득 교장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정식으로 연극반을 운영함으로써 부산 학생연극의 단초가 마련되면서 향파의 극작 활동은 본격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1947년 6월 1일 예술제가 개최되었을 때 이시우 교사가 주도한「넋」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동래극장에서 공연하였지만, 본격적인 재학생의 연극 활동은 1947년 9월 이주홍 교사가 부임해 온 이후의 일이다.

 1949년 9월 국립부산수산대학 전임강사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2년 동안 창작, 공연되었던 작품은「탈선춘향전-월매집 편」,「대차」,「청춘기」,「열풍」,「호반의 집」,「아버지는 사람이 저래(감자와 여선생)」,「봄없는 마을」등이 있다. 이들 공연은 학교 강당은 물론이요 시내 각 극장을 순회하면서 공연되는 등, 학생연극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로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수산대학에서도 연극반을 지도하였던 향파는 이들을 중심으로 1950년 한국전쟁 시에는 해군정훈대에서 순회공연을 이끌기도 하였다. 1952년엔 부산에서 민주신보사의 5백만 환 현상모집에 주변의 강권으로「성웅 이순신」을 응모하여 당선되었다. 1953년 수산대학 극회의 창립공연으로 중앙극장에서「신부추 방」(장수철 연출)이 공연되었으며, 1954년 7월엔 청문극회가 창립되어 기념공연으로「구원의 곡」(김수돈 연출)이, 이어 12월엔「청춘계도」(송일 연출), 그리고 그 이듬해엔「탈선춘향전」(장수철 연출)이 차례로 공연되었다.

 1950년대 후반기에는 주로 학생극을 통해 새로운 창작극들이 공연되었으며, 1957년 10월엔 부산문필가협회가 발간한『문필』창간호에「뒷골목」을 발표하고 있다. 1964년엔 극단 입체극장에서「연이야 울지마」(설령 연출)를 공연하였고, 1965년엔 교육대학, 수산대학, 부산여대 등에서「시궁창에도 꽃은 핀다」를 공연하였다. 그리고 1970년엔 부산시민회관 착공 기념 예총합동공연으로민족의 태양」과「방자 부활하셨네」가 공연되는 것을 끝으로 향파의 극작 활동은 막을 내린다.

 이와 같이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향파의 극작 활동은 문화의 불모지였던 부산에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이 시기에 그는 무려 30여 편에 이르는 희곡을 창작하면서 주로 번역극에 매몰되었던 부산연극의 현장에 창작극을 보급한 독보적인 존재였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작품들이 문예지를 통한 발표가 아니라, 주로 공연 현장의 대본으로 발표됨으로서 그 정체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향파문학관 개관으로 인하여 많은 작품들이 보존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우선 성그나마 일별한 작품의 양상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본다.

 우선 학생극이라는 명칭으로 인해 행여 작품의 수준을 전문 기성극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는 선입견은 버릴 것을 권한다. 1943년엔「여명」이『매일신보』 현상공모에 당선되었던 사실을 비롯하여,「대차」가『문예신문』(1947)에,「좀」이『백민』(1947)에,「탈선춘향전」이『대중신문』(1949)에,「나비의 풍속」이『한일신문』(1952)에,「구원의 곡」이『부산일보』(1951)에,「보재기」가『한일신문』(1952)에,「성웅 이순신」이『민주신문』(1952, 오백만 환 현상공모 당선)에,「뒷골목」이『문필』(1957)에 발표되었던 사실과,「신부추방」,「구원의 곡」,「청춘계도」등의 작품이 ‘청문극회’에서 공연되고, 다시「구원의 곡」이 1974년에 한국연극협회 부산지회 산하극단 합동공연 작품이었다는 사실 등에서 그 객관적인 수준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확인된 작품들의 양상을 그 특징 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태풍자극 및 희극 계열의 작품
「대차」(1막) : 겨울밤 전차정거장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에피소드. 허영에 찬 인력거군 아내가 막차를 놓치고 뉘우치다 남편을 만나 귀가하는 내용.
「좀집」(1막) : 고학생 남매가 욕심 많은 집주인의 횡포와 음모에 맞서 전재민에게 주거의 기회를 돌려주는 내용. 해방 이후 흉흉해진 민심을 고발한 작품.
「호반의 집」(4막) : 가극. 서울 부호 심씨가 기부한 여학교 교사』를 그의 바람둥이 사위가 교장의 딸 혜원을 취하기 위하여 가짜 위임장으로 협박을 하지만, 서울에서 심씨가 등장함으로써 위기가 해결됨. 물질만능주의에 타락한 현대인들을 풍자한 작품.
「나비의 풍속」(1막) : 가난한 시인 박민의 부부 간, 고부 간, 부자 간에 일어나는 갈등을 사랑과 용서로써 극복하는 내용. 가난으로 인해 각박해지는 현실을 풍자한 작품.
「탈선 춘향전」(2막) : 고전해학극.「춘향전」의 ‘광한루’ 편과 ‘월매집’ 편을 현대적인 구성과 문체로 패러디한 작품.
「신부추방」(1막2장) : 나비의 풍속 후일담. 시인이자 극작가인 박헌. 학생극 대본 마감 임박한 가운데 가난으로 인해 부부싸움을 하나, 여러 방문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운데 그들 부부도 화해하게 되는 결말.
「아버지는 사람이 저래」(1막) : 함세덕 작「감자와 족제비」 개편작. 이웃집의 족제비 소동으로 인하여 숨겨둔 쌀이 드러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그 쌀을 형편이 어려운 학교에 기부하게 된 구두쇠 노인의 이야기.
「꾀꼬리를 기다리는 집」(3막) : 고전해학극. 욕심꾼 실보가 부잣집 석노인 딸에게 장가 들기 위하여 그의 4촌 동생 수재를 거짓 선보이는 간계를 꾸미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수재가 장가가게 되는 이야기.「맹진사댁 경사」와「흥부전」의 모티프를 변용한 작품.
「시궁창에도 꽃은 핀다」(1막) : 계주인 정희가 곗돈을 횡령하고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해 고리대금업자에게 담보로 잡힌 동생 대신 결혼식을 올리는 내용. 물질만능주의에 의해 윤리가 무너져가는 세태를 풍자한 작품.

 둘째, 낭만주의 계열의 작품
「청춘계도」(5막) : 고전극.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삼국사기』의「열전에 전하는·온달」편을 극화한 작품.
「구원의 곡」(3막) : 일명「조국의 꽃」. 가무극. 신라 진평왕 시절, 설노인의 딸 진아의 약혼녀인 가실이 늙은 장인을 대신하여 변방에 군역을 갔다가 3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게 되자, 그녀를 짝사랑한 도무와 그리고 도무를 사랑하는 마희 등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낭만적 사랑이야기.『삼국사기』의「열전에 전하는·설씨녀」편을 극화한 작품.
「춘향전」(5막 11장) : 고전소설「춘향전」의 각색 작품.
「봄 없는 마을」(3막 6장) : 무사노코지 사네아츠원작을 번안한 작품. 화가 현영과 그의 제자 인배, 견습생 애라 사이의 애정의 삼각 갈등을 그림.

 셋째, 비극 계열의 작품
「뒷골목」(1막) : 가난한 연극연출가의 비극적 가정 이야기.

 넷째, 역사극 및 시대극 계열의 작품
「열풍」(1막) : 가난하지만 지조를 잃지 않는 효당 노인을 중심으로 착취를 일삼는 일제와 친일지주의 만행을 고발하면서, 삼일만세의거로 저항하는 결말.
「낙성의 달」(4막) : 선덕여왕 때 대야성에서 벌어진 일. 김품석, 검일 죽죽의 이야기.『삼국사기』의 열전에 전하는 죽죽편을 극화한 작품.
「성웅 이순신」(5막 6장) :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극화한 작품.

 이상의 분류를 바탕으로 학생극 대본의 특징을 정리하여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극 계열의 작품이 희박한 것에 비해 희극 및 풍자극의 갈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를 통해 해방 이후 각박해지는 인정과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가는 세태를 희극과 풍자극의 갈래를 통하여 비판하고자 하였던 향파의 구조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희극과 낭만주의 계열의 작품을 통하여 가난한 청춘남녀의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거나, 또는 가난으로 인한 부부간의 갈등 끝에 사랑을 회복하는 내용이 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하여 선생의 순수하고도 낙관적인 이상주의적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역사극과 시대극을 통하여 학생들에게 조국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충의의 정신을 고취시키고 있다. 이러한 작품을 통하여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선생의 민족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넷째, 형식적으로는, 이상의 의지와 세계관을 전달하기 위하여 과장된 대사들로 웃음을 유도하거나,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소극적 에피소드가 삽입된다거나, 상황과 문맥에 맞지 않는 작위적인 장면이 설정되거나, 또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와 같이 전능한 해결사가 투입되기도 하는 등의 구성상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상으로 향파 이주홍의 극문학 세계를 1930년대 전반기 카프시기와 일제말기, 그리고 해방이후의 세 시기로 나누어 각각 아동극에서 시나리오로, 그리고 학생극·성인극으로 전개되었던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러는 가운데 밝힐 수 있었던 향파 극문학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정리하여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카프시기의 아동극 작품들은 향파의 초기 작가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는 사실과, 아울러 카프 계열의 아동극 양식의 특징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그 의의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강점기에 씌어진 향파의 아동극은 당시 아동극의 초창기를 개척하였던 선구적 작품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둘째, 그들 아동극은 다시 동물우화극, 야학가극, 풍자소극, 세시풍속극, 희극 등의 다양한 갈래로서 실험됨으로써 아동극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의의를 지닌다.
셋째, 그러한 각각의 하위 갈래들은 다시 극적 알레고리, 독백을 통한 전사의 보고, 위기의 점층식 구성, 희극적 이완, 최후의 긴장, 노래를 통한 힘찬 피날레, 에이런을 통한 풍자 등등의 다양한 극적 기법들을 구사함으로써 아동극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는 의의를 지닌다. 넷째, 가벼운 계몽주의에서부터 민족모순, 계급모순을 극복하고자 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식을 표출하고 있다는 의의가 있다. 특히「톡기눈알」과「개떡」을 통해서는 초기 향파 문학이 견지하였던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의의를 지닌다. 그 중에서도「톡기눈알」은 다양하고도 치밀한 극적 기법에 의한 구성을 완성시킴으로서 매우 뛰어난 아동극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어 일제말기에는 여타의 갈래에서 벗어나 시나리오 창작에 집중하였던 특징을 보인다.「전원교향곡」이 순정영화의 내용으로 전개된 사실로 보나, 아직 그 이외의 작품들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할 수 없으나 그 정황으로 볼 때 이는 아마도 태평양전쟁에 혈안이 된 일제의 국민문학 동원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행보가 아니었나 여겨진다.

 그리고 해방 이후 왕성하게 이루어졌던 극작 활동은 부산의 학생극과 성인극을 출범시켰던 토대가 되었다. 본문에서 밝혔듯이 향파의 작품들로 인해 선구적이고 독보적인 창작극의 세계가 구축되는 가운데, 그를 중심으로 부산의 연극이 학생극, 대학극, 성인극으로 나아가는 동안 점차적으로 부산의 연극 인프라가 구축되는 계기가 되었었다.

 이처럼 향파의 극문학 세계는 아동극, 시나리오, 학생극, 성인극 등의 영역으로 폭넓게 전개되는 가운데, 아동극계와 영화계, 그리고 특히 지역연극계에 선구적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렇게 지대한 업적에 비해 그의 극문학에 대한 연구는 이제 출발 단계에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실은 부산연극사뿐만 아니라 한국연극사에 있어서도 중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향파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극문학 전집 발간이 계기가 되어 극예술학계의 관심이 보다 적극적으로 집중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향후 향파의 연극적 업적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 작업과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그 가치를 밝히는 작업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다음은『이주홍 극문학 전집』을 발간하기까지 수집된 자료를 정리한 ‘극작품 목록 및 공연보’이며, 이를 토대로 중복되는 작품과, 중복으로 추정되는 작품, 그리고 아직 발굴되지 못한 작품 등에 관한 간략한 서지 사항 등을 정리하였다.

극작품 목록 및 공연보
번호 작품명 발표지 및 극단명 연도 장르 비고
1 뱀사람·말사람 『신소년』발표 1990.1 아동극  
2 톡기눈알 『신소년』발표 1990.2 아동극  
3 팥밧 『신소년』발표 1990.3 아동극 검열로 전문 삭제
4 젊은통장사 『신소년』발표 1990.4 아동극 아동희극
5 도화시간 『신소년』발표 1990.8 아동극  
6 개떡 『신소년』발표 1934.3 아동극 야학가극
7 낙동강봄빛 『신소년』발표 1934.4 아동극 검열로 전문 삭제
8 전원회상곡 『영화연극』
발표
1940.1 시나리오 연재로 기획되었으나 문을 닫음.
후편이 육필 유고로 발굴됨
9 여명 『매일신보』
현상작품
1943(4). 희곡 현상공모 당선 미리 써둔 시나리오
『동학당』을 희곡으로 개작하여 응모
10 장미의 풍속 조선영화
주식회사
1943(4). 시나리오 현상공모 당선
11 춘향 조선영화
주식회사
1944 시나리오 현상공모 당선8미발굴『장미의 풍속』(10번)과 동일한 작품으로 추정됨
12 진리의 뜰 배재중학교상연 1945 희곡 *미발굴
13 대차 배재중학교상연 1945 희곡 『문예신문』1947.발표
14 배재중학교상연 1946 희곡 *『좀』(15번)으로 햐여
『백민』1947.5.발표
15 『백민』발표 1947 희곡 *『집』(14번)의 개제작
16 청춘기 동래중학교 상연 1947 희곡 *『청춘계도』(36번)로 하여 청문극회(1954) 제2회 공연
17 열풍 『민주신문』
발표
1947 희곡 배재중학교에서 준비 도중에 동래중으로 전근하여 김수돈 연출로 공연
18 토끼의가정 『아동문학』
발표
1947 아동극 *미발굴 내성국민교 상연
19 호반의 집 동래중학교 상연 1948 희곡

남상엽연출 1949년 오페라 대본으로
고쳐 남선고녀(현 남성여교) 에서 최인찬 작고, 인출로 공연

20 탈선충향전 동래중학교 상연 1949 희곡 『대중신문』(1949) 발표 이후 여러단체에서 수십차례공연
21 낙랑공주 가정고녀 상연 1949 희곡 박재용 연출 *미발굴 『왕자호동』(34번) 과 같은 작품 추정가능
22 낙성의 달 동래가정고녀
상연
1949 희곡 박재용 연출『지새는 성두』(26번)로개제
23 가실 동래가정고녀
상연
1949 희곡 장수철 연출
*미발굴.『구원의 곡』(30번)과 같은 작품추정가능
24 아버지는
사람이 저래
동래중학교 상연 1949 희곡 *함세덕의 『감자와 족제비』개편작
25 봄 없는 마을 동래중학교 상연 1949 희곡 원작번안
26 저새는 성두   1950 희곡 *『낙성의달』(22번)의 개제작
27 나비의 풍속 동래고녀 상연 1950 희곡 『한일신문』(1952.1.13)연재
28 춘향전 부산여상 상연 1951 희곡  
29 신부추방 수산대학연극부
창립공연
1951 희곡 『나비의 풍속』(27번)후인담
*의 일막극을 사이에 넣고 개작.
중앙극장에서 상연
30 구원의 곡 『부산일보』
연재
1951 희곡 청문극회 창립공연(1954)김수돈 연출
31 승전고 『파랑새』발표 1952 아동극 *미발굴
32 보재기 『한일신문』
발표
1952 희곡 *미발굴
33 성웅 이순신 『민주신문』
연재
1952 희곡 오백만 환 현상공모 당선
34 왕자호동
(자명고)
경남고녀 상연 1953 희곡 *미발굴
『낙랑공주』(21번)와 같은작품 추정가능.
35 잃어버린 막간   1954 희곡 *『뒷골목』(40)으로 개제
36 청춘계도 청문극회
제2회 공연
1954 희곡 *『청춘기』(15번)의 개제작
37 똘이의 재판 『경남공론』
발표
1954 아동극 인형극·공연용
대본 제목은 『똘똘이의 재판』
38 꾀꼬리를
기다리는 집
부산여상 상연 1954 희곡  
39 달빛은
이슬처럼
내리고
부산여상 상연 1954 희곡 남상협연출 *미발굴
40 뒷골목 『문필』발표
교육대학 상연
1954 희곡 『문필』창간호(1957.10)발표
41 임이
부르신다면
부산여상 상연 1954 희곡 남상협연출 *미발굴
42 따분한 밤 『부산일보』
발표
1956 희곡 대화극 형식의 촌극 이주홍 수필집
『조개껍질과의 대화』(1691)재수록
43 피리부는 소년 『현대문학』
발표
1957 시나리오 1960.1~4연재
44 연이야 울지마 입체극장상연 1958 아동극 설령(성상영)연출
45 시궁창에도
꽃은 핀다
교육대학 상연 1958 희곡 김영송 연출제1회 영남학생 연극경연대회『부일단막회곡집』 수록
46 못나도 울엄마 상연 1960 아동극  
47 민족의 태양 예총 합동공연 1964 희곡 김영송 연출 시민회관 착공기념 공연
48 방자
부활하셨네
1965 희곡
49 산울림 한국연극협회
부산지회산하극단 합동공연
1966 희곡 설령연출*
『구원의 곡』(30번) 의 개제작
50 그늘진지역   1970 희곡 *미발굴
『문필』지에 게재하고 부산사범대학(변혁규 연출)에서 공연하였음
51 봄의 스케취   1974 희곡 *미발굴 학산여중 공연을 위한 작품

 위의 목록에 나타난 작품들을 장르별로 나누고, 중복되는 작품과 미발굴 작품들로 나누어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의 정리된 연보 및 약력 등의 기록을 종합한 결과, 전체 작품 편수는 희곡 35편, 아동극 12편, 시나리오 4편 등 모두 51편이며, 이 중 중복되는 작품과 미발굴 작품을 제외하고『이주홍 극문학 전집』에 실린 작품은 모두 31편이다.

 둘째, 희곡 35편 중, 현재 발굴되어 『이주홍 극문학 전집』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21편이다.

동일 작품이나 제목만 바꾼 개제작 : 5편.
1. 「집」(1946)과 「좀」(1947)
2. 「청춘기」(1947)와 「청춘계도」(1954)
3. 「낙성의 달」(1949)과 「지새는 성두」(1950)
4. 「구원의 곡」(1951)과 「산울림」(1974)
5. 「잃어버린 막간」(1954)과 「뒷골목」(1957)

「제목은 다르지만 동일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 : 2편
1. 「낙랑공주」(1949>와 「왕자호동」(1953)
2. 「가실」(1949)과 「구원의 곡」(1951)

번안 또는 개편작 : 3편
1. 「아버지는 사람이 저래」(1949) ; 함세덕의 「감자와 족제비」 개편작
2. 「봄 없는 마을」(1949) ; 원작 번안
3. 「신부추방」(1951) ; 
펵의 일막극을 사이에 넣은 개편작

미발굴작 : 9편
1. 「여명」(1943」) ; 『매일신보』 당선
2. 「진리의 뜰」(1945)
3. 「낙랑공주」(1949)
4. 「가실」(1949)
5. 「보재기」(1952) ; 『한일신문』 발표
6. 「달빛은 이슬처럼 내리고」(1956)
7. 「임이 부르신다면」(1958)
8. 「그늘진 지역」 ; 『문필』 발표
9. 「봄의 스케취」(연도 미상)

셋째, 아동극 12편 중, 현재 발굴되어 『이주홍 극문학 전집』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8편이다.

검열로 전문 삭제된 작품 : 2편
1. 「팔밧」(『신소년』 1930. 3))
2. 「낙동강 봄빛」(『신소년』 1934. 4)

미발굴작 : 2편
1. 「토끼의 가정」(1947) (『아동문학』 발표)
2. 「승전고」(1952) (『파랑새』 발표)

넷째, 시나리오 4편 중, 현재 발굴되어 『이주홍 극문학 전집』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2편이다.

미발굴작 : 2편
1. 「장미의 풍속」(1943) ; 조선영화주식회사 시나리오 공모 당선
2. 「춘향」(1944) ; 조선영화주식회사 시나리오 공모 당선

[ 참고문헌 : 문학저널-"이주홍 극문학의 전개 양상" 정봉석(동아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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