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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층민중의 참혹한 현실에 직면하여 향파 이주홍은 “인간의 모든 역사는 삶의 투쟁에서 출발한다”(<산가>)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사회주의적 변혁전망이 암시된다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향파의 소설은 대체로 특정한 관념으로 인물을 이상화하거나 그들의 행위를 규제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궁핍한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 과격성을 비판하고, 삶의 기미와 세태의 추이를 날카롭게 살피며, 인간 심성의 황폐화와 욕망의 추악상을 묘사한 문제제기형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라고 할 70년대에 들면서, <경대승>(1976), <어머니>(1977), <아버지>(1981) 등을 통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포악한 정치권력과 압제에 맞선 민중의 무력항쟁을 암시한 점은 기억할 만하다. 이들 소설에 대해 선행연구는 과거의 역사를 환기함으로써 현재의 부조리한 상황을 비판하고 있으며, 이는 70년대 유신체제의 억압적인 현실에 맞선 민중주의와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 따라서 민중은 역사를 추동시키는 원동력이며 나라의 주인이라는 역사의식을 드러낸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경대승>은 1973년에 설립된 문예진흥원이 유신체제라는 살벌한 상황 속에서 문예중흥의 기치를 내걸고 기획한 <민족문학대계>의 성과물이다. 이 기획은 민족사의 중요한 사실을 소재로 하여 국난을 극복한 선인들의 의지와 위업을 소설화하고, 이들 소설을 통해 국민정신을 계발하고 주체의식을 배양하는 데 근본 방향을 두었다. <경대승>을 완성한 직후에 향파는 이어서 <어머니>를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1977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발표된 <어머니>는 <경대승> 이후의 작품이라 하겠는데, <경대승>이 수록된 민족문학대계가 1977년 12월에 간행되었기 때문에, 독자가 먼저 접한 작품은 <어머니>인 셈이다. <어머니>는 정중부의 집권 이후 명학소의 천민 망이 망소이가 주도한 민중봉기를 다루고 있는데, 같은 사건을 <경대승>에서도 다루면서 왜 <어머니>를 집필했을까 의문을 품어 볼 수 있다. <경대승>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역사상 중요한 민중봉기에 대해 확장된 관심, 역사적 사건의 목록에 의거할 수밖에 없었던 창작상의 제약, 유신정권과 다를 바 없는 무인정변에 대한 심적 부담 등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다른 글에서 더 치밀한 논증에 의해 얻어질 것이다. 다만 본고에서는 <경대승> <어머니>를 중심으로 작중인물들의 행위양상을 검토하고, 이런 양상이 향파의 현실인식과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해명하고자 한다.

 민족문학대계의 기획에 관변측 민족개념의 기운이 창대하지만, 이를 무시하더라도 국난을 극복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는다는 데 어느 정도의 제한을 받았을 것이다. 작가의 다음과 같은 부기가 이를 입증한다.

 소설의 구성상 필요로 첫 머리의 청주 민란만은 허구로 했으나 그 밖의 것은 모두 사실에 준거해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행여나 역사학 전공을 하는 이들에 혼란을 주는 일이 있을까 해 밝혀 두는 바다.

 세부적인 일화는 물론이고 인물의 행적에 대해서도 <경대승>은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엮은『고려사』와『고려사절요』를 저본으로 삼는다. 경대승의 행적에 대한 역사기록 가운데 소설작품이 강조한 내용과 부합하는 것은 큰 뜻이 있어 가산을 축적하지 않았고 선고의 토지 문권을 군부에 헌납했다는 점, 학식과 용략을 중시하고 유자를 중용했다는 점, 경대승의 장례에 뭇사람들이 애도했다는 것 등이다.
또 <경대승>에서 의종의 거행 대부분은 연표에 가까운 방식으로 제시하고, 의종 명종대의 사건도 연대기적 목록으로 제시된다.

 명종 4년인 1174년 1월간에 폭발한 중들의 궐기를 뒤이어서, 9월 25일 서경유수이던 병부상서조 위총 이 정 중부·이 의방 등을 타도하기 위해 반기를 들고 일어선 것이었다. (…중략…) 그래서 중들은 12월 18일, 출정군을 격려차 어마어마하게 정장을 하고서 나온 이 의방과 그의 심복 고 득원그의 형제인 이 준의·이 인등을 모조리 베어 죽였다. (…중략…) 그래서 다음해인 1175년 10월에 조 위총은 마지막으로 취할 길이 없어서 서 언을 금나라에 보내어 구원을 청했다. (…중략…) 마침내 조 위총은 그 자신의 목숨마저도 1176년 명종 6년 6월, 윤 인첨의 손에 잃고 말았다. (110-119)

 그래서, 그래서, 마침내’와 같은 방식의 서술은 인간이 실천한 것보다 인간에게 발생한 사건의 목록을 드러낸다. 이럴 경우 역사적 사건은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일어난 사태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대승>에서 역사 혹은 역사적 사건은 작중인물의 행동에 의해 재현된다기보다 서술자(작가)에 의해 말해진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실에 준거”하고 있는 까닭에, 극적 요소가 부족할 뿐 아니라, 작가가 개입할 여지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사실의 기록적 전사만으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가 특권적인 가치평가 역할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은 서사권위의 약화를 초래한다. 사건의 목록을 연대기적 순서로 나열할 뿐이라면, 작중인물의 의지적인 행동이 발현될 수 없고 오히려 무력감을 강화할 수 있다. 정중부를 제거하고 난 이후 경대승이 보여준 동요와 무력감은 작가가 사료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라 할 것이다. 인물의 운명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현재의 작가가 역사적 사건에 일방적으로 의존한다면, 인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이주홍의 <경대승>을 사건의 목록으로 채워진 편년체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 최충헌을 배제하고 경대승을 내세운 데 작가의 자의가 일정하게 작용한다 할 것이고, 이는 사건의 드러난 목록들 사이에서 드러나지 않은 의미를 읽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 탐구는 대상과 사건에 대한 경대승의 관계를 규정하고 인물 상호간의 역동적인 작용을 드러낸다. 1장 <설한풍>에 제시된 허구적 사건은 경대승의 행동과 생각에 필연적인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1장 <설한풍>에서 9세의 나이로 경대승은 청주 민란 선무 임무를 띤 아버지를 따라 본관지 청주를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신분서열에 의구심을 품기도 하고, 향리의 아들 허승과 장터를 구경하며 백성들의 소박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소탈함을 드러낸다. 그런데 청주 민란을 목격하고 그는 유순하던 백성들이 “잔인한 악귀”로 돌변한 데 경악한다.

 일순에 광포한 짐승들로 둔갑을 했던 민중들의 함성!
그렇게도 죽기가 싫어 불 속에서 튀어 나오고 튀어 나오고 하던 그 김 항부!
눈을 바로 뜰 수 없는 눈바람 속을 가르고서 필사의 청주 탈주를 감행하던 자기와 병졸……
원한 어린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서 쳐다보는 개경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 수형자들의 머리들!

 광포한 짐승같은 민중, 화형당하는 관리, 필사의 탈주, 효수된 수형자의 원한 어린 눈은 경대승의 삶에 전환점을 제공하는 극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때의 경험은 악몽을 꾸게 하는 정신적 외상이 되어 경대승의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는다. 그렇기 때문에, 경대승은 일어난 사태의 목격자가 아니라 행동을 주도하는 참여자로서 소설 전체 속에 통합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민란이라는 집단적인 행동장면에 노출됨으로써 경대승의 삶에 전기적 시간이 아니라 역사적 시간이 개입할 근거를 제공한다.
아버지 경진의 상중에도 악몽에 시달리는 경대승은 토지 문건을 군부에 헌납하기로 결심한다.

 그 점에 대해선 나도 많이 생각해 본 바요.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사를 멸하고 공(c)을 받드는 일이라면 아버님께서도 굳이 꾸짖진 않으실 거요. 문과의 명가집 출신으로서 어찌 무과를 택할 수 있는 일이냐고 반대하시는 아버님의 나무라심을 듣지 않고, 굳이 무과를 지망했던 것도 나로선 범연치 않은 포부를 가지고 있었던 거요. 문신만이 독천하고 있는 이 비뚤어진 천하를 어떻게 하면 정도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 해서 말이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내 자신의 몸부터 맑혀 놓을 필요가 있는 거요. 물론 문신들 모두가 다 그렇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이 토지들도 어떤 경로를 통해서 내 집 재산이 되어 있다는 것은 당신도 들어서 잘 알고 있을 거요. 저렇게 백성들이 못살아 허덕대는 것도 실은 그 근원이 이런 역리에 있는 거란 말이오. 난 지난해 삼월 아버님을 따라 중미정구경도 가보고, 그 다음달엔 만춘정 구경도 가보았지만, 그때부터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했던 것이오. 난 중미정에서 그 피맺힌 이야기를 듣고서 정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울었단 말이오. 그래서 무슨 노릇을 해서라도 약하고 설움받는 사람들 편에 서서 내 힘껏 이 세상을 바루어 보리란 결심을 했던 것이란 말이오.

 위 인용에 따르면, 가산을 헌납하는 일은 나라를 위한 멸사봉공이라는 것, 문과명가 출신이면서도 무과를 선택한 것은 문신 독천의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일이며 이는 약자 민중의 편에 서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로써 <순직 청담한 성품>을 세상 사람의 뇌리에 깊게 심었다(7)는 진술처럼 경대승은 청렴한 충신이며, 학식과 용략을 중시한 것처럼 문무겸비 혹은 문무조화를 추구했고, 그의 장례에 백성들이 눈물을 흘린 것처럼 민중의 지지를 받은 지도자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경대승은 청렴성, 문무조화, 민중성을 두루 갖춘 혼란기의 지도자라는 것이며, 여기에 향파 이주홍이 경대승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무인정변을 이끈 정중부나 이의방 이의민 그리고 최충헌 등이 고려사 열전에서 ‘반역전’에 실린 것과 달리 경대승은 일반 열전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도 중요한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에서도 “스스로 무신의 편에 서서” 무과를 지원한 “특이한 인물”이라 하고 있지만(233), 경대승이 문과명문가 출신이면서 무과를 선택한 인물인가는 분명하지 않다. 무신란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되지만, 경대승은 무신란 이후 빠르게 승진하여 10여년 만에 장군이 되는데 이는 정중부 정권 내에서 나름대로 지분을 가진 경진의 후광, 정치적 영향력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경대승의 거사(명종 9년 1179년) 직전에 경진이 사망했다고 본다면, 토지 문서를 헌납하고 항상 무인의 불법행동에 분개하여 복고의 뜻이 있었다는 고려사절요의 기록처럼, 경대승은 “무신만의 독천을 미워해 정중부의 무권천하를 뒤엎은”(148) 것이다. 따라서 가산 헌납을 두고 <어머니>에서 “탐관오리들에게 찬물을 끼얹어” 준 “양심인”(233)이라고 할 때, 이는 권세를 업고 백성들의 전지를 약탈하여 “향관토민들의 원구의 적”(26)이었던 경진의 탐욕과 관련하여 무인들의 토지점탈을 비판한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문신명가 출신의 무인이라는 허구는 작가의 착오라기보다 의도적인 설정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허구적 설정은 첫째, 가문을 중시한 문신귀족제도에 대한 비판을 의도한 것일 수 있다. “문신들의 안하무인한 전횡에 진절머리”가 났다며 “무신끼리의 단합”을 위해 정중부에게 접근한 것처럼(60), 이는 정중부의 무인정변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둘째, 무신들의 독재와 전제를 비판한 경대승의 거사를 정당화한다.
결국 경대승은 모든 독천과 전횡, 독재와 전제를 비판한 셈이다. 그래서 “문이건 무이건 나라 사랑하는 일”(60)에 다를 게 없다는 뜻으로, 경대승은 정중부에게 권력 체계 내부의 비적대적 경쟁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옛부터 민심이 천심이란 말이 있어오지 않습니까. 처음엔 이번 무인들의 의거를 다 통쾌하게 생각했다 하더라도, 일이 중정을 잃으면 백성들이 과거 문신천하이던 때처럼 또 우리를 외면하려 할 게 아니겠읍니까! (…중략…) 진정 그게 중요한 겁니다. 밉더라도 경쟁자는 둬두는 편이 내 몸에 유리하거든요. 아주 없애 버리고 만다면 나중에 경쟁 대상을 동지 안에서 찾아 필경엔 자중지난이 일어나기 마련인 것이니까 말입니다.

 진준의 말처럼 “문과 무는 저 천공에 떠 있는 해와 달”과 같으니 문무의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비적대적 경쟁은 체계에 장력을 부여하고 변화와 갱신에 기민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한편의 씨를 말리겠다는 극단이 오히려 사회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의식한 점에서, 이주홍은 문무 사이의 비적대적 경쟁을 통해 어느 한 극단을 동일시하는 전체주의를 부정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비뚤어진 천하를 ‘정도’로 되돌려 놓겠다고 할 때, 그 ‘정도’란 무엇이며, 되돌려 놓는 방법은 어떠하고, 그것은 어떻게 약자 민중을 위한 것이 되는가를 물을 수 있겠다.

 경대승이 중미정에서 목격한 피맺힌 사연(31-32)은 『고려사절요』 의종 21년(1167년) 3월에 기록된 일화이다. 토목 공사에 부역을 나온 사람이 식량을 자급하지 못해 동료들에 얻어먹는 처지였는데, 어느 날 역부의 아내가 점심을 준비해와 동료와 나누어 먹으라고 말한다. 이에 역부가 몸을 팔거나 남의 것을 훔친 것이냐고 추궁하자, 아내는 머리털을 깎아 팔아 양식을 샀다며 머리를 내어보였다는 것이다.
<경대승>은 무인들이 겪는 차별과 경제적 불만을 무시하지 않지만, 백성들의 참혹한 삶을 근거로 왕의 폭정과 방탕을 강조한다. 백성들의 과중한 조세, 공물, 부역에 지방탐관오리의 토색질, 탐욕스런 권신들의 전횡 등 모든 문제의 궁극 책임은 왕에게 있다는 것이다.

 권신들이 재물을 거두어들이기에만 눈이 어두워, 저렇게 순량한 백성들을 굶겨 죽여 노천의 원귀가 되도록 해놓고 있는 원인도, 근원을 따지고 보면 그것을 주도할 책임이 있는 왕 자신이 사치와 향락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내세운 자기 실력을 믿고 장차 왕이 될 생각까지 품어보는 정중부(90)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경대승>이 무인정변을 전면적으로 정당화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의종의 폭정을 비판하면서도 경대승은 이의민을 염두에 두고 임금을 시해한 자가 멀쩡하게 살아 있다고 위협한다. 동시에 정중부의 ‘쿠데타’는 “백성들에게도 가뭄에 단비같은 청량제”(174)가 되었다 하여 무인정변을 전적으로 배제하지도 않는다. 백성들은 군왕을 시해한 것에 반감이 있지만, 무인의거를 통쾌하게 여기고 앞으로 전개될 국정개혁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경대승은 “민심이 천심”(83, 231)이라 하고, 수탈당하는 백성이 폭발하는 것은 “이치의 당연한 결과라 생각”(234)한다.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고, 또 때로는 물리 배를 엎치가도 한다는 말은 곧 임금은 백성이 세우는 것이나, 때에 가서는 백성이 그 임금을 없애기도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순자를 인용한 부분은 실력으로 현실 권력을 장악하고 신상필벌로 정치함으로써 백성들의 삶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누구의 입장에서 이해하는가에 따라 그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기존 질서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볼 때, 이는 군주 세습을 부정하고 왕의 성과 천명을 바꾸거나 교체할 수 있는 백성들의 잠세력을 드러낸다. 그러나 기존 질서를 긍정하는 입장에서 반정이나 역성혁명은 불법적인 권력승계일 뿐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기존 체제에 대한 백성들의 잠재적 위험성을 의미한다. 청주 민란 이후 경대승이 악몽에 시달리는 것으로 볼 때, 그는 후자, 즉 민중의 통제불가능한 힘을 두려워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경대승은 백성에 의해 군왕의 성씨가 바뀌는 사태가 오기 전에 민심을 달래는 것이 현명한 통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민란을 방지하는 방법으로 정중부에게 “자가숙청의 서정쇄신”을 역설(127)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경대승은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차선책으로 군사력에 의한 정치 목적의 달성을 인정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의종의 방탕과 음욕을 비판한 것은 군왕을 내면적 동기에 의해 평가하는 것이며, 결국 인덕을 베푸는 군왕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추구한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왕을 정점으로 하는 집권적 통치체제가 ‘정도’이며, 이 ‘정도’를 회복하는 방법은 문무의 조화, 자가숙청의 서정쇄신, 곧 체제 내적 개혁이라는 것, 이런 개혁이 있을 때 백성들의 삶이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대승>은 천민 출신의 무관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그들은 대개가 어릴 때부터 굶주리고 짓밟히고 그래서 글도 배워보지 못하고 자라온 미천한 출신들이었기 때문에, 별안간에 쥐어진 권력에만 눈이 어두워 나라일 같은 것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86-87)

 경대승은 거사 직후 정균의 승선직을 제수하자 유자가 아니라 글을 모른다며 사양한다(136). 그런데 문신독천의 비뚤어진 세상을 염두에 두면, “글도 배워보지 못하고 자라온 미천한 출신들이었기 때문에” 권력에만 눈이 어둡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일 것이다. 중수한 강안전의 문액 ‘향복’과 관련된 삽화도 장군들의 무식을 강조하고 있다. ‘향복’은 ‘항복’과 비슷하다고 거부하여 ‘영희’라고 지으니 “이 알량한 유식 장군들이 영희라는 글뜻을 알아먹을 수가 없어서” 또 한바탕 논란 끝에 중방의 칭호를 따서 ‘중희’라 결정(142-143)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천한 무인들의 정치적 진출에 반감을 뜻한 것으로, 경대승을 문인명가 출신이면서 무인의 길을 선택한 인물로 그린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대승>의 내적 논리를 따르면, 사회적 규범과 계급의 질서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점에서, 향파는 뒤이어 <어머니>를 창작했을 것이다. 표제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작품의 간판격 인물이라 하기 어렵다. 그녀의 남편은 장관이 지난 길 앞에서 진작 비켜나지 않았다고 매를 맞고 새도 아닌 인간이 어떻게 그 이상 빨리 비켜날 수 있냐며 항변하다가 제 손으로 판 흙구덩이 속에 ‘생매장’ 당해 죽는다.(161) 남편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억척어멈이 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는 어린 자식의 약값을 위해 머리털을 깎아 팔고 밥을 얻어 어린 자식을 양육한다. 이러한 ‘궁욕’ 속에서도 어머니는 ‘자모’나 ‘비굴’함이 없이 의연하고 담대한 태도로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또 아들 형제의 거사를 짐작하고 자식 잃은 것은 가슴 아픈 일이만 “너의 아버지에겐 그게 효도가 되는 일”>(172)이라고 말하며, 진영을 떠나 노모를 만나러 온 망이에게 “왜 왔느냐? 싸움이 끝났느냐? 어서 가거라. 관군 온다는 소문을 듣고서도 통수가 이렇게 빠져나올 틈이 있더란 말이냐!”(185)고 꾸짖는다. 2차로 일어난 후 투항 여부를 두고 고민하던 망이가 꿈 속에서 만난 어머니에게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증오의 눈으로 “너의 뜻이 성취”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래서 항복을 하는 게 어떠냐고 내게 물으러 온 거다 그말이겠구나! 그러나 내 아들아, 이 늙은 어미나 너의 이 연약한 댁이 이렇게 고생을 참고 있는 것도 모두 너의 뜻이 성취되기를 바라서가 아니었더냐?”분명히 그러는 노모의 두 눈은 이글이글 증오로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245)

 “어머니의 명령이시라면 불 속으로도 물 속으로도 사양 않고 들어가”겠다(245)고 하거니와, 망이 망소이 형제에게 어머니는 생사여탈권을 지닌 양육자일 뿐 아니라, 자식들의 대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는 윤리적 지주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어머니는 남성적 여성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남성성은 인간 사이의 차별, 불평등과 부자유에 분노하던 남편에게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노모는 “곧잘 죽음 남편의 이야기”를 자식에게 들려주었다.

 너의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고 있던 걸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지. (…중략…) 우리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로, 너희 미물만도 못한 신세를 타고 나왔던가 말이야. 새로 제맘대로 날고, 물고기도 제맘대로 놀고, 나무도 돌도 이 세상 만물치고서 제 자유로 살아가지 않는 게 하나도 없는데, 어찌하여 우리 인간만 부리는 사람과 부림받는 사람의 구별이 있어 왔던고 말이야.(170)

 이처럼 반복되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한 정보제공일 수 없다. 그것은 경험을 재현함으로써 해석과 가치를 부여하고, 가족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현실의 본질에 관한 의미를 전달함으로써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조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망이 형제는 “너의 아비가 어떻게 죽었더냐며 기회 있을 때마다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고 훈계해 주던 노모의 말소리”(252)를 회상하는 것이다. 망이 망소이의 거사는 어머니의 의식화 교육이 주효했다 하겠고, 남편이자 아버지의 경험은 화자인 어머니와 청자인 자식들의 공동경험으로 통합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망이 형제의 삶의 모델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이다. “내가 죽더라도 이 내 눈알을 빼어 저 본읍 공산 상상봉에다 걸어놓고 보아줄 테다”(173)라는 저주는 자식들에 의해 되풀이된다.

 아직 피가 마르지 않고 있는 두 머리를 차마 바로 쳐다보려고도 않으면서, 그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깊은 감회에 젖어 있었다.(274)

 망이 망소이는 선대의 고통과 상처를 망각하지 않고 대물림하며, 가족사적 내림으로서의 계기적 저항을 드러낸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망이 형제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를 꿈꾸며 저항주체로 성장하는 데 동기를 부여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라 하겠다.

 망이 망소이의 난에 관한 옛 기록은 매우 소루하여 민란의 원인을 명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이들 형제가 거사를 결심하게 된 배경은 첫째, 기층민중들이 새 무인천하 아래에서 겪는 절망과 분노라는 “민심의 흐름”(182)을 정확하게 읽어낸 데 있다. <어머니>에서 민중구성은 경작권만을 지녔을 뿐 농노와 다를 바 없는 농민, “사육하는 동물보다도 더 비참한 처지”(180)의 천민노비이다. 농민도 농노이고 천민 역시 노비와 다를 바 없는 처지라 하고 있으므로, <어머니>는 빈농하층민 혹은 천민노비를 저항운동의 기본동력으로 삼는다고 하겠다.

 거사 결심의 둘째 배경은 “무신쿠데타의 교훈”에 있다. 말하자면, 단결된 힘만 있으면 신분이 낮은 자도 올라설 수 있고, “신성 불가침 속의 신앙적 존재”처럼 보였던 군왕도 한낱 ‘범인으로 격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177).

 이상과 같은 근거에서, <어머니>는 기층민중들의 신분적 차별에 대한 자각, 사회의식의 성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거사의 성공 요인을 기층민중의 공동행동에 둔다. “범의 등에 얹혀진 신세”(166), “건곤일척의 사생”(179), “사생의 마지막을 건 결전”(227)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흥망과 성패를 하늘의 명에 맡긴다는 뜻은 아니다.

 형제들! 자신이 있어? 우리가 힘을 하나로 뭉쳐서 싸우면 하늘도 무심치 않아 반드시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실 거야!(215)

 승리의지가 결과를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의미에서, 이들의 투쟁은 신성이나 운명과의 투쟁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운명 개념에 저항하고 의지적인 결단과 적극적인 행동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사의 성공요인은 “민중의 불만이 한덩어리”(179)로 뭉쳤다는 데 있고, 장사도 당해내지 못한 “민심의 단결”(188)로 집단행동에 참여할 때 해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사 목적은 급진적이지 않다.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한 정부의 회유책에 의해 1차 반란이 진정된 것을 근거로, 망이 망소이의 난은 부곡천민들의 신분적 법제적 차별에 대한 반항으로 평가된다. <어머니>에서도 이들의 저항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적 반란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우리가 정권을 잡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단 말이오. 설사 우리가 정권을 잡아 보고 싶다 하더라도, 우리들 같은 무학한 처지로서는 정치할 능력이 없지 않소!”
망이는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 해 들려야 하는 것이, 피로할 정도였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뭣 때문에 일어섰던 건가요?”
“나라의 악제도를 뜯어 고쳐서, 우리도 다같은 사람 구실을 하고 살 수 있도록, 집권자에게 보장을 약속받자는 거요.”(182-183)


 무학의 처지로 정치할 능력이 없다거나 나쁜 제도를 고치자고 한다는 점에서, 망이는 경대승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말하자면 정권 전복보다 체재 내적인 제도개혁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조정을 향해 “차라리 칼날 아래에 죽을지언정 종국에 항복하는 포로는 되지 않고 반드시 왕경에 이르고야 말겠”다고 한 것도 “마지막 죽음의 결속을 보여 천하에 그 통분한 사정을 알려”(224)주려는 것이다.

 우리가 요구한 건, 우리를 인간 아닌 인간에서 인간 같은 인간으로 환원시켜 달란 거야. 만민이 평등하도록 우리를 축생 이하의 구속에서 풀어 달라는 거야. 우리를 사람같이 한번 살아 보도록 무거운 잡세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거야. 우리에게만 둘러씌운 부당한 공물과 부역과 병역에서 부담을 덜어 달란 말이야. 우리에게도 경작의 의무만이 아닌 토지를 주고, 우리도 귀한 사람처럼 국학에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고, 떳떳하게 말도 탈 수 있는 자유와, 귀인이 지나갈 때 땅에 엎드리지 않아도 좋을 자유와, 양민들과 혼인할 수 있는 자유와, 가축처럼 매매가 안되고도 살 수 있는 인간의 자유를 달란 말이야.(196)

 그러나 경대승의 의도가 역성혁명도 가능케 할 기층민중의 잠재적인 위험에 근거한 것이라면, 망이의 거사는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기층민중의 잠재적 가능성에 기반을 둔다. “천민해방이 이룩되는 그날”(272)은 만민평등과 자유, 형제애의 이상이 실현되는 날이며, 인간이 온갖 인위적 제도적 굴레로부터 해방되는 날이라 하겠다. 인간 구원의 그날을 <어머니>는 역사의 과제로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망이 망소이의 난군은 민중의 단합된 힘, 곧 하나의 통일적 연대 속에서 행동한다. 그런데 망이 망소이를 제외하고, 난군 개개인의 차별성이나 개별성은 구체적인 형상을 얻지 못한다. 꺽쇠, 선바위, 덕보와 같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역할이나 몫, 그들의 구체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발견하기 어렵다. 개별성을 결여한 채 집단성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은 집단적인 한풀이로 전개될 위험이 있고, 그들이 항쟁의 목표와 방향을 주체적으로 인식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들을 이끌고 나갈 영웅적인 지도자를 강조하게 된다.

 산행병마사를 자임한 망이는 “백성을 위해서만 있는” “민중의 군사령관”임을 천명하며 백성들에게 “자기의 지시에 복종할 것을 명령한다”(166)하고, “우리의 맹세를 배반”할 때 “백성의 이름”으로 징벌하겠다고 선언(187)한다. 따라서 집단적 존재로서의 민중과 영웅적인 지도자 사이의 심적 거리는 불가피하다. 이들은 거사 후 거사 목적, 행동방침을 두고 분열한다. 망이는 악질 고관이라도 저항하지 않을 땐 가해하지 말라고 명령(166)하지만, “시원스레 복수도 못 해 보는 민란이라면, 처음부터 뭣 때문에 일어났던 거냐는 불만”(183)도 적지 않다. 망이는 거사의 목적을 제도개혁에 두지만 “그러나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드물었다.”(183) 또 토벌대가 난민을 진압하기 위해 훈련 중이라는 소문에 내부가 크게 동요한다. 그래서 지휘부는 병기 병량을 조달하는 일뿐 아니라, “민심 통일을 위한 선동에 침식도 돌아보지 않을 정도”(186)가 된다. 명학소가 충순현으로 승격된 이후에도 백성들뿐 아니라 두령들 사이에서도 혼선이 빚어지며, 현 승격이 취소된 후 천민들의 심리적 좌절감이 극심하고, 가족과 농사일 생각에 이탈자가 속출하게 된다. 더구나 토벌군의 매수전략에 말려 집단이탈자가 생기면서 난민군의 결속이 급격하게 붕괴(240)되면서, 망이는 결전을 앞두고 잠든 난군을 보면서 고마움과 함께 “저들 역시 내일이면 곧 달아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외로움(243)을 느낀다.

 분명 영웅적인 인물은 공동체에 봉사하지만 동시에 그는 공동체에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민중은 역사의 전환기나 변동기에 적대적인 양진영 중 어느 한편을 열광적으로 편들기보다 그 사이에서 동요하면서 일상적 삶을 계속한다. 거사를 전적으로 외면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관에 고발하는 몽택이가 있는 것처럼, 투쟁 가운데 농사일을 생각하는 것은 농민의 소박한 유토피아적 소망일 수 있다.

 둘째는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하고 싸움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게 되자 군사들은 집생각을 하게 되고, 집생각이 남에 뒤따라서 남은 가권들을 누가 먹여살릴 것이냐. 먹여 살리는 절대요건이 되어야 하는 농사를 누가 짓느냐 하는 근심들이 그들을 안절부절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239)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주 백성 전체가 반역하였으니 ‘중립’은 없다고 할 때(186-187), 망이는 강력한 주력부대로서의 농민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농민과 이해관계가 달랐을 가능성이 있다.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현재에 대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당면한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은 작가가 역사와 맺는 관계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달리 말해, <경대승> <어머니>에서 작중인물이 당대와 맺는 관계는 작가가 현재의 문제를 어떻게 파악하고, 사회 전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와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향파 이주홍은 감옥에서 해방을 맞은 바 있거니와, 1965년 한일협정은 매우 절망적인 사태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주홍은 이러한 심정을 <수염 난 동화>(현대문학, 168호, 1968)에서 저승여행이라는 우의를 통해 드러낸 바 있다. 즉 나라를 위해 전사한 수많은 무명민병들이 ‘원귀’가 되어 떠돌고 있다는 것, ‘개판’과 다를 바 없는 시국 때문에 그들의 죽음이 보람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친일매국노조차 활개치고 있으니 이런 “기막히는 세상”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자네는 신불을 믿는다고 했지만, 일찌기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천도는 공평무사해서 어느때고 선인의 편이 되어주는 거라고. 그렇다면 천도는 어째서 선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백이숙제를 굶어죽게 했느냐. 그러면서 반대로, 도척이같은 사내는 매일 죄없는 인간을 죽이고, 사람의 고기를 먹고, 흉악무도한 짓을 하면서 수천 도당으로 천하를 횡행해다녀도 어떻게 천수를 누릴 수 있었냐고. 그래도 천도는 선인의 편이 돼있는 거냐고 말일쎄. 그러니 세상에 하늘이 그 모양인 판에 뭣을 믿으란 말이냐.(157)

 말하자면 사필귀정이라거나 권선징악이라는 천도 혹은 사회적 정의가 없다는 뜻이다. 도덕과 정의라는 당위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부도덕과 불의가 지배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요 현실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수염 난 동화>는 “역사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곧 역사의 부조리에 대한 강한 의식을 드러내었다 하겠고, 이는 <음구>(1972)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감옥에서 해방을 맞이한 독립운동가 미산 윤의수는 일제하 친일경찰 마쓰바라(심채정)에게 고문당하고, 아버지까지 잃은 바 있다. 그러나 심채정은 어떠한 심판도 받지 않고 해방 후에도 승승장구한다. 여기에 미산의 아들이 심채정의 딸과 결혼하려는 설정을 통해 작가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기대한 것과 이룬 것 사이의 낙차, 원한 것과 얻은 것 사이의 어긋남을 아이러니라고 할 때, 반어적 어긋남은 시간의 경과를 함축한다. 아이러니는 시간의 과정이 초래한 질적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부조리, 역사의 아이러니로 볼 때, 이주홍에게 시간은 행복한 전체나 발전에 이르는 계몽의 도정이 아니다. <음구>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그것은 부패와 타락에 이르는 불만스러운 경로가 아닐 수 없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인가, 아버지는 아버지고 자식은 자식인가. 사랑의 자유! 사랑의 절대! 사랑의 존엄! 사랑의 권리! 그 어색하게 웃으며 내밀던 손을 또 한 번 잡아야 하는가. 마쓰바라 부장 심채정은 해방이 되던 다음날 자기도 치안대에 넣어주기를 바라면서 ?너나 없이 우리는 모두가 악몽 속에서 살아왔노라?고 했었다. 탁한 물도 맑은 물도 종국엔 같은 바다로 들어간단 말인가. 역사란 그 바다! 차라리 선부처럼 그때에 죽었더라면 이런 오욕의 흙탕물 속엔 몸을 안 더럽혀도 좋았을 것이 아니가. 남은 여생 동안 며느리의 얼굴 앞에서 죽는 날까지 그 무테안경을, 그 지하실을, 그 무도장을, 아버님의 죽음을, 어머님의 죽음을, 시간을 이어서 읽어내야 하는가.(82)

 시비와 청탁을 불문하고 같은 바다에 이르는 것이 역사라면, 이 교활한 역사는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고 따라서 선인도 약자도 편들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오욕의 흙탕물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는 현재라는 논리가 현실을 장악할 때, 인간의 고통과 운명도 단수화될 수밖에 없다.
<음구>에서 역사는 인물의 내면에 상처를 남기는 폭력형태지만, 그렇다고 완전 망각하거나 초월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개아를 떠”나 용기와 희망에 넘치던 해방 다시의 ‘백성상’(84)을 환기하고 있거니와, 이주홍은 민족 내부의 공동체적 연대를 강조한다.

 죽인다 살린다 싸운다 터진다 해도 그래도 우리 겨레끼리니까 얼마나 마음 편한가. 쇠사슬로 꽁꽁 묶여 말도 못하고 숨도 못쉬고 꿈조차 못 꾸게 했던 그 어둡고 쓰리고 서럽고 외롭던 날이 다시 오는 날이 있다면 정말 우리는 모두 어떻게 살란 말이냐.(74- 75)

 그러니까 향파가 민족 내부의 갈등을 억압하거나 화해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겨레끼리의 싸움은 서로 다른 꿈을 위한 길항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이 극단적 배타적인 투쟁을 의미하는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같은 민족으로서 서로의 운명은 불가피하게 결부되어 있으므로, 민족 내부의 적대적인 투쟁은 자멸에 이른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급대표자가 아니라 이민족의 침략에 맞선 민족대표자로서 민족 외부의 적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이 시기 향파는 정의로운 역사의 심판과 민족의 공동체적 연대를 당면한 과제로 인식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역사소설 <경대승> <어머니>는 향파의 이와 같은 현실인식의 산물일 것이다. <경대승>에서 이주홍은 “충성을 다하고도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죽은 백이숙제”처럼, “정직할수록 고독”하기 마련이니 “하늘이 참된 자를 돕는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불운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위로해 주는 마취제”(38)라는 지적한다. 군왕을 살해한 이의민이 대장군으로 승진한 것처럼, 이 세상에 정의가 없다는 뜻이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개인간이나 지는 편에 붙어 있었을 경우엔 큰 죄가 되는 것이나, 국가나 당파의 이기는 쪽에 섰을 때에는 영광스런 논공 행상의 대상이 된다.(109)

 또 토벌대에 쫓긴 조위총 반군이 영토 할양을 약속하며 금나라에 구원을 요청한 일을 두고, “단지 싸움에만 이기자는 생각에서, 내 땅을 타국에 빼어 주어 스스로 민족 반역자가 되는 것도 불사”(119)했다고 비판한다. 경대승이 문무의 비적대적인 경쟁을 허용하고 난민을 달래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 있다.
<어머니>에서 망소이는 먼 훗날 역사가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올바르게 평가하리라 믿는다.

 우리가 더 살아남아서 남은 목숨을 우리 천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바치는 것뿐입니다. 그런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몇 십년, 아니 몇 백년 뒤에는 반드시 그때 사람들이 우리가 지금 한 일을 이해해줄 테니까요.(264-265)

 여기서 이주홍은 망이 망소이의 불운을 역사적으로 특수한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들의 불운은 한때 빛나는 열정과 희망을 품고 자유를 꿈꾼 자의 몫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자유를 위해 죽음과 싸우기를 거부하고 생을 보존하고자 할 때, 우리는 남루한 일상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공자와 같은 성현이 칭송한 덕으로 백이숙제와 안회가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고 한 것처럼, 향파 이주홍은 역사의 흙탕물에 희생된 자를 기억함으로써 대의를 위해 헌신한 자의 고통과 비극을 복수화하고자 한 것이다. <경대승> <어머니>는 주인공들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이렇게 대미를 구성함으로써 그들의 죽음은 특별한 지위를 얻는다. 그들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 운명이라는 더 큰 전체 속에 포섭되지 않는다. 그들의 죽음은 그들만의 특별한 운명, 다른 사람의 죽음과 대체할 수 없는 유니크한 죽음이라는 뜻이다. 이런 의미로, 그들의 죽음은 한 세계의 종식이다. 한 세계의 종말을 담은 죽음인 까닭에, 그들의 죽음은 사회에 기여한다. 효수된 망이 망소이의 머리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것처럼, 그것은 이기적인 삶을 부끄럽게 만든다는 뜻에서 그렇다. 목숨을 건 행동만이 우리를 삶의 협잡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 이는 과거 역사 속에 숨겨진 가능성의 탐구라 하겠고, 두 작품이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라 소설의 반열에 들 수 있는 것도 이런 탐구에 있다.

 지금까지 본고는 향파 이주홍의 <경대승> <어머니>를 중심으로 작중인물의 행위양상을 검토하고 그것이 작가의 현실인식과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살폈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경대승>은 역사적 사실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인물을 상당히 무기력한 존재로 만든다. 그러나 경대승을 문인명가 출신의 무관으로 설정함으로써 혼란기의 사회에 문무가 조화하는 비적대적 경쟁을 대안으로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대안은 백성이 지니고 있는 잠재적인 위험을 의식한 것이기 때문에, <경대승>은 체제 내적 개혁을 모색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어머니>에서 어머니는 남성적 여성이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함으로써 망이 형제가 저항주체로 성장하는 데 동기를 부여한다. 이런 점에서, 아버지는 자식들의 행동 모델이다. <어머니>는 빈농하층민 혹은 천민노비를 저항운동의 기본동력으로 삼고 이들의 잠재적 가능성에 근거하지만, 체제 내적 개혁을 모색함으로써 인간해방의 날을 역사의 과제로 남긴다. 또 <어머니>는 난군을 개별성이 아니라 집단성의 차원에서만 드러냄으로써 영웅적 지도자와 기층민중 사이에 심적 거리를 만든다.
 
셋째, 감옥에서 해방을 맞은 향파는 정의로운 역사의 심판과 민족의 공동체적 연대를 당면한 과제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인식의 산물이 <경대승>과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두 소설은 대의에 헌신한 자의 특별한 죽음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고통을 복수화한다. 이는 역사 속에 숨겨진 가능성의 탐구라고 할 것이다.
[ 참고문헌 : 문학저널-"이주홍 장편동화 3부작의 현재성" 김상욱(춘천교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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